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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RMET > 삼부주류가 추천하는 맛집 ‘LA 호프’

관악역의 랜드마크가 된 호프집 대한민국 치킨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LA 호프다. 1981년 단층 건물에서 아담하게 치킨과 생맥주를 팔던 시대를 거쳐 이제는 주변 상권까지 책임지는 그야말로 ‘대박집’이 됐다. 글 구본진(객원기자) 포토그래퍼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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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관악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LA 호프가 보인다. 나란히 선 2층 건물 2개를 다 쓰고 있는 LA 호프는 관악역을 통해 산에 오르는 등산 객들에게 없어선 안 될 아지트다. 산세가 험한 관악산 등반을 마치면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절로 나기 때문이다. “장인, 장모님이 1981년도에 직장을 그만두시고 200만원을 빌려 시작하셨 어요. 치킨에 대해 전혀 모르셨던 두 분이 매일 닭을 튀기며 레시피를 연구 하셨다고 해요. 그때 레시피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어요. 요리를 따로 배우 신 건 아니셨어요. 지금과 마찬가지로 치킨이 접근성이 수월했던 거 같아요. 오픈하자마자 경기도에서 생맥주 판매량이 1위였다고 들었어요.” 

 

 

주변 상권을 만든 대박집
이영곤 대표의 장인, 장모인 창업주 부부는 10년 간 직원 없이 호프집을 운 영했다. 장모님이 주방에서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장인어른이 홀을 책임졌 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닭을 튀기고 맥주잔을 채우는 일이 힘에 부쳤다. 두 명이었던 LA 호프 직원은 조금씩 늘어났다. 이영곤 대표가 처음 LA 호 프를 본 것은 2009년 처가댁에 예비 사위로 인사를 하러 왔을 때다. 규모에 놀랐고, 경험이 없던 분들이 호프집을 성공적으로 키웠다는 사실이 놀라웠 다. 이영곤 대표는 요식업 관련을 전공했기에 두 분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알 수 있었다. 가게는 늘 문전성시였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간이 의자 하나 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르는 매출만큼 창업주 부부의 체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사위인 이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죠. 어머니가 거의 매일 전화로 가게에 관해 이야기하셨어 요. 문제가 생기면 늘 제게 전화를 하셨죠. 요식업을 전공하긴 했지만, 치킨을 튀기는 호프집 운영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두 분이 힘들어하시 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 로 들어왔죠.” LA 호프에서 시간을 차곡차곡 쌓은 직원들에게 이 대표는 그야말로 ‘낙하 산’이었다. 텃세 아닌 텃세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 대표에게 가장 큰 고민은 텃세가 아닌 ‘체계’였다. “매출, 매입 데이터도 없고, 직원들 급여를 현금으로 봉투에 담아서 주셨을 정도로 체계가 없었어요. 레시피도 어머니의 감각에만 의존하고 있었어요. 이런 것들을 하나씩 잡아 나갔어요. 특히 월차, 연차 등 직원 복지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76개였던 메뉴도 40여 개로 줄였어요. 가게를 오래 하려면 제 가 직접 모든 메뉴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2년 정도 설거지부터 차근차근 주방 일도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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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맥주보다 치킨이 유명한 호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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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호프는 치킨집이 아니다. 생맥주와 곁들일 다양한 안주를 판매하는 호 프다. 그러나 사람들이 치킨집으로 기억하는 건 독보적인 치킨의 맛과 비주 얼 때문.  “처음 저도 맛을 봤을 때 놀랐어요. 말 그대로 ‘겉바속촉’이었거든요. 브랜드 치킨과 전혀 달랐어요. 닭이 작은 편이라 양으로 따지면 아쉬운 면도 있었지 만, 매일 손님으로 가게가 꽉 찼어요. 장모님이 주방에서 일하시는 걸 보니 맛 있을 수밖에 없구나 싶더군요. 장모님은 튀김옷에 양파를 많이 사용하셨는 데, 믹서기를 안 쓰고 강판에 양파를 갈아서 사용하셨죠. 강판에 갈아야 양 파의 향과 맛, 식감, 질감까지 모두 살아나거든요. 튀김옷에 양파를 많이 써 서 다른 치킨에 비해 저희 치킨 색이 좀 진한 편이에요.” LA 호프의 성공 비결은 맛이 전부는 아니다. 창업주 부부는 늘 주변 상인들 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LA 호프가 생길 당시에는 주변에 식당이랄 것이 없었다. LA 호프가 잘되면서 식당이며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창업주 부부는 LA 호프가 동네를 밝히는 등대 역할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마지막 손님이 나가기 전까지 전구 하나도 먼저 끄지 않았다. 골목에서 가장 큰 가게가 불을 끄면 주변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은 창업주를 거쳐 고스란히 이 대표에게 계승 됐다. 창업주 부부와 이 대표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삼부주류의 이종민 이사다. “LA 호프는 언제와도 직원들 표정이 참 밝아요. 손님이 많 고 바쁜 호프집에서 직원들이 이렇게 신나게 일하기는 쉽지 않아요. 손님을 먼저 생각하고 직원을 위하는 이영곤 대표 의 진실한 마음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비결일 거예요.” 나이가 동갑이란 걸 얼마 전에 알았다는 두 사람. 나이나 직 급을 따지지 않고 진실하게 맺어온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열매를 맺고 있다. 그 열매는 고스란히 두 사람에게 돌아간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내 몸이 힘들어도 손님에게 늘 최선을 다해서 그런가 큰 위기는 없었어요. 조급하게 생각하면 결 국 손님이 아닌 나를 위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그 렇게 했다면 지금의 LA 호프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앞 으로도 손님만을 위하고 주변 상인과 주민들과 공생하며 LA 호프를 지켜 나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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