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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칸티나 La Cantina

전국에 소문난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많다. 하지만 ‘최초’라는 타이틀 자격을 갖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라 칸티나’뿐이다.

글 구본진(객원기자)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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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이탈리안 요리를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장 본인은 라 칸티나의 창업주 김미자 씨다. 지금도 가게에 종종 들른다는 그녀는 1967년 야심차게 라 칸티나의 문을 열었다. 당시의 라 칸티나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내놓는 요리 는 양식에 가까웠다. 술도 팔았다. 심수봉, 이동원과 같 은 전설적인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손님 명단에는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정치계 거물도 수두룩 했다. 제대로 된 이탈리안 요리를 내놓기 시작한 건 1982년도에 김미자 씨가 이재두 씨에게 가게를 넘긴 뒤 다. 이재두 씨는 현재 라 칸티나 이태훈 대표의 아버지 이자 2대 대표다. “아버지는 레스토랑을 인수하시기 전에 주한 미군 전용 호텔인 내자 호텔 지배인으로 근무하셨어요. 그러던 중 에 창업주가 레스토랑 관리를 부탁했다고 하시더군요. 이후 1982년에 창업주가 미국으로 가야 할 상황이 생기 자 내자 호텔 총지배인 벨라르디 씨와 아버지가 공동으 로 인수하게 됐죠. 창업주인 김미자 씨는 라 칸티나를 가장 잘 운영할 것 같은 사람으로 아버지를 점 찍으셨대 요. 그래서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인수하라고 제안했다 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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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꿈
이재두 씨와 벨라르디 씨는 흉내만 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아닌 ‘진짜’ 이탈리안 요리를 손님상에 내놓고 싶었다. 용산 미군 호텔과 워커힐 레스토랑 등에서 이탈리안 요리사를 데려오는 일부터 시작했다. 다음은 식재료 수급이었다. “소시지, 치즈, 훈제 연어 등은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해요. 오리지널과 차이는 있 지만, 당시에는 가장 이탈리안 요리와 가까운 음식이었죠. 링귀니(Linguine, 납작하 게 뽑은 파스타) 기계를 미군 부대를 통해 부품을 구해 조립해서 썼는데, 자동차 한 대 값을 주셨다고 해요.” 미군과 가깝게 지냈던 두 사람도 식재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힘들게 구한 파스타 면을 알 덴테(al dente, 파스타나 재료를 중간 정도로 설익혀 쫄깃한 질감을 살 리는 조리법)로 익혀서 손님께 냈더니 제대로 삶지도 않은 면을 내놓았다고 항의를 받 기도 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 레스토랑 직원들은 말 못할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1990년대에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유럽 여행을 다녀 온 손님들이 라 칸티나 요리가 현지 음식과 다르다고 항의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하 지만 라 칸티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의 맛을 똑같이 구현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의 맛과 가장 가까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 에 없었다. 이태훈 대표와 그의 아버지 인생은 손님에게 맞춰져 있었다. “예전에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멀리서 오시는 예약 손님이 늦으면 주방 마감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셨어요.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셨 던 거죠. 한 번은 예약 시간을 훌쩍 넘긴 손님이 도착하셨는데, 잘 다려진 슈트에 나 비 넥타이를 멋스럽게 매고 오셨어요. 그때 깨달았죠. 이곳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는 걸. 손님들에게는 다른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어요.” 인생의 스승이자 길잡이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칭찬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부족한 점이 많은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야단을 치거나 큰소리를 치지 않았다. 이태훈 대표는 이런 아버지의 교육 방식이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 움이 됐다. 레스토랑의 안살림을 맡은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초기에는 어머니와 직 접 재료를 사러 다녔다. 좋은 고기를 구하려 미아리부터 모래내까지 정육점을 다 뒤 졌다. 라 칸티나 재료팀은 가락시장에서 악명이 높다. 감자, 당근 등 사소한 재료까지 박스를 뒤집어 가장 좋은 것만 골라 챙겼기 때문이다. 안 판다며 화를 내는 상인도 여 럿이었다. 하지만 재료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 나 손님들이 재료 좋은 것을 알아봐주면 시장에서 고생은 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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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된 정통 이탈리안 요리의 자부심
포털 사이트에 라 칸티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삼성세트(링귀니 파스타·양파 수프·샐러드·갈릭 스테이크가 나오는 코스 요리)’가 뜬다. 이 세트는 고(故) 이종기 삼 성화재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종기 회장은 늘 링귀니 파스타만 고집했다. 직원들 과 함께 와도 링귀니 파스타만 선택하는 회장의 체면을 생각해 안심 스테이크를 함께 냈다. 그것이 삼성세트의 시작이다. 사실 이태훈 대표는 라 칸티나가 삼성세트로 기억 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 칸티나의 모든 메뉴는 트렌드와 상관없 이 50년 이상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진화한 한국식 이탈리안 요리이기 때문이다. 가 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인 스파게티 콘 레 봉골레도 정통 이탈리안 요리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변형됐다. 마늘 마리나라 소스에 익힌 통조개와 파스타를 함께 익혀 내 는데, 다른 곳에 비해 국물이 넉넉하다. “처음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봉골레 파스타와 비슷했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국물을 더 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그렇게 지금의 라 칸티나만의 독특한 봉골레 파스타가 탄 생했죠. 삼성세트도 원래 메뉴판에 없었어요. 지금은 찾는 분이 많아서 넣었죠. 정통 을 따라가는 것보다 손님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도 늘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빛나는 추억의 시간을 지키는 일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요즘. 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태훈 대표는 이 모든 게 라 칸티나를 기억해주고 찾아주 는 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아버지는 손님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셨어요. 그래서 단골이 정말 많았죠. 이제는 많이 줄었어요. 단골손님들도 나이가 드시고, 레스토랑에 오는 횟수도 줄어들 수밖 에 없죠. 새로운 단골이 생기는 속도보다 기존 단골이 줄어드는 속도가 빠른 거 같아 요. 트렌드를 쫓기보다 라 칸티나의 맛과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맞다 생각해요. 라 칸티나는 이미 제 것이 아니에요.”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2012년 건물 리모델링으로 부득이하게 8개월 동안 문 을 닫았을 때 겪었던 일 때문이다. 계획된 공사는 5개월이었는데 3개월이나 지체되고 있었다. 8개월 동안 직원들 월급도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리모델링이 끝나자 한 사람 도 빠짐없이 다시 라 칸티나로 돌아왔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단골 회장님들의 연락 은 감사함을 넘어 감동이었다. 심지어 공사가 잘 되고 있나 가게에 찾아와서 확인하 는 회장님도 있었다. 이태훈 대표는 그때 라 칸티나는 자신만의 레스토랑이 아님을 느꼈다. 라 칸티나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것이며, 추억의 장소임을 말이다. 자극적인 맛에 입맛이 길들여진 요즘 사람들은 종종 라 칸티나 요리를 밋밋하다 평 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요리는 없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 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라 칸티나는 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내놓고 있다. 사장과 직원 의 경계가 없고 누구나 똑같이 일하며, 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레스토랑이 바로 라 칸티나다. 아버지가 그랬듯 이태훈 대표도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 손질하고 멀리서 찾아와준 손님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마지막 손님이 나 간 뒤에야 간판 불을 끈다. 이것이 우리가 라 칸티나를 진정한 노포(老鋪)로 인정하고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