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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뮤지컬 <벤허> <지킬 앤 하이드> 동시 주연 꿰찬 민우혁

“야구 10년, 무명가수 10년 무대서 버티는 필살기 다졌죠”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가창력을 겸비한 민우혁은 남자 배우가 부족한 뮤지컬계에서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선 굵은 이목구비에 태평양 같은 어깨, 타고난 고음과 안정된 가창력. 딱 ‘본투비 뮤지컬 배우’다. 뮤지컬 ‘벤허’에서 고전 영화 속 찰턴 헤스턴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는 민우혁을 만났다. 글 유주현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포토그래퍼 전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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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급성장한 한국 뮤지컬계는 남자 주연 배우 기근에 시달려왔다. 일부 유명 배우들의 개런티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다. 그런데 요즘 신선한 얼굴이 등장해 굵직 한 대극장 뮤지컬 작품들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9월만 해도 뮤지컬 <벤허>와 <지 킬 앤 하이드>에서 동시에 주연을 맡으면서 드라마 촬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 게 보낸 배우 민우혁(36)도 그중 한 명이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기는 하네요. 원래 성격이 시간을 되게 아까워해요. 잠자는 시간 도 아까워서 시간을 잘 쪼개 쓰는 편이죠.” 선 굵은 이목구비에 떡 벌어진 어깨, 타고난 고음과 안정된 가창력. 딱 ‘본투비 뮤지컬 배우’로 보이지만, 알고 보니 멀리 돌아왔다. 10년 동안 야구를 했고, 10년 동안 무명가 수였다. 서른 살에 뮤지컬 무대에 서기까지 안 해 본 알바가 없었다. 그런데 2015년 최 고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무대를 밟은 후론 승승장구다. <아이다> <안나 카레니나> <프랑켄슈타인> 등 대형 작품에서 줄줄이 주연을 꿰찼다. 올해는 ‘모든 남자배우들의 로망’으로 꼽히는 <지킬 앤 하이드> 무대까지 데뷔했다. “긴장했냐구요? 글쎄요, 제 ‘지킬’은 자유로워 보인다고들 하시던데요. 지킬과 하이드 를 동시에 표현하는 ‘Confrontation’의 경우도 다른 분들은 조명에 따라 각도를 딱딱 맞춰서 하지만, 저는 그냥 자유롭게 하거든요.” 하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노래’라 할 만한 ‘지금 이 순간’을 부를 때만 큼은 달랐다. 누구나 아는 노래지만, 작품 속에 빠져들어 불렀을 때 느낌이 특별했다 는 것이다. “첫 공연 날 ‘아, 이런 노래구나’ 처음 제대로 느꼈죠. 워낙 유명한 노래잖아 요. 결혼식 축가나, 행사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 한 곡만 따로 불러도 좋지만, 작품 안에서 부를 때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잘 만든 노래로 다가오더군 요. 그 작품에 녹아있는 모든 걸 한 곡에 담고 있는데, 그 가치가 엄청난 것 같아요. 그 노래 하다가 울컥 목이 메서 혼났어요.”

 

악역 메셀라 2년 만에 주연 벤허로

승격 현재 공연 중인 <벤허>(10월 1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는 2017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이다. 민우혁은 초연에도 출연했지만 2년 새 상황은 달라졌다. 악역 메셀라에서 주연 벤허로 승격된 것이다. “메셀라는 야망 가득한 캐릭터라 저는 좀 많이 거칠게, 상남자 마초 로 표현했었거든요. 그때 메셀라의 임팩트가 강했었는데, 벤허를 어 떻게 하겠냐고 우려하는 분도 있었어요. 메셀라도 매력적이라 열심 히 했었는데, 왕용범 연출님이 <프랑켄슈타인> 때 저를 재발견해 주셨죠. ‘나중에 벤허 해도 어울리겠다’고 하시기에 그때는 상상 못 했어요. 저는 <벤허>가 한국 뮤지컬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어렵지만 이 역할을 남자배우들의 워너비로 만들겠 다는 사명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벤허는 단순히 멋진 영웅 캐릭터는 아니다.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걸 잃고, 복수하면서도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당연히 캐릭터 해석도 쉽지 않았다. “일단 초연 보신 분들 께 메셀라의 모습으로 비칠까 봐, 그들의 상상을 완전히 뒤집고 싶었 어요. 근데 벤허가 쉽지 않은 인물이더군요. 귀족으로 살다가 배신 당해 몰락하고 또 복수에 성공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고 나 서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 모든 과정 중에 감정이 계 속 변하니까요. 사랑에서 복수·희망 등 장면이 바뀔 때마다 관계에 따라 변하는 여러 감정을 표현해야 하죠. 그런 부분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게 관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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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벤허> 하면 전차경주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수십 마리 말과 엑스트라 5만 명을 동원해 5주 동안 촬영했다는 고전 영화의 스펙 터클을 무대에서도 창의적으로 살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초연 때 연출님이 배우들에게도 비밀로 감추고 계셨어요. 대본에는 영화장 면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 ‘이게 된다고?’ 의심했었죠. 리허설 때 처음 빨간 막이 탁 떨어지면서 연기와 함께 말들이 등장할 때 정말 소름 끼쳤어요. 그 장면을 위해 연출님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쇼를 봤다고 하시더군요. 제겐 이 장면도 초연 때와 전혀 다르게 와 닿아 요. 메셀라는 열등감에 차서 오로지 벤허를 이기려는 마음 하나를 보여줘야 하고, 벤허는 그런 메셀라를 이해 못 하면서 그에게 복수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메셀라를 해봐서 그런지 벤허로서 메셀라 를 보는 게 아프더군요.” 기독교적 배경이 강한 콘텐츠지만 보편적인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 를 전하고 있기에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는 내용이다. 민우혁 자신도 종교가 없지만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기독교인들은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을 수도 있겠죠. 제 경우에는 종교가 없지만 아무 상관 없어요. 오히려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계기도 되더군 요. 사실 어떤 믿음이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처음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야구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창시절을 온통 야구에 바쳤다. 야구 명문 군산상고를 거쳐 LG 트윈스에 입단 했지만, 6개월 만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야구를 했던 게 뮤지컬을 하기 위한 발판이었던 것 같아요. 운동하다 보면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그걸 이겨내고 또 이겨내는 연속이거든요. 제가 운 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그는 배우생활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표현했다. 남들은 조명받고 좋은 것만 보 지만, 무대에서 빛나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압박이 모든 직업 중에 가장 큰 것 같아요. 잘되면 잘될수록, 좋은 역할을 하면 할수록 그 압박이 더 심해지죠. 뮤지컬은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까지 있으니 비교도 되고, 남들 하는 것 보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해요. 규칙적이지 않고, 매번 다이나믹하게 감정과 기분이 바뀌는 상황이니까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하루라도 쉬면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잠시라도 쉴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고 멍해져요. 그래서 쉬고 싶지 않은 거죠. 심지어 이런 인터뷰 하나를 해도 계속 평가받는 입장이 되 니, 오로지 날 위한 시간이 없는 느낌입니다. 그런 중압감이 크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멘탈이 운동하면서 다져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다른 배우분들이 존경스러워요. 너무 쉽게 접근하는 분은 각오하고 오셔야 할 것 같아요.(웃음)”

 


선수 시절 꿈이었던 한국시리즈서 애국가 불러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 애국가를 불렀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선수 시 절 꿈이었던 한국시리즈 홈경기를 뮤지컬 배우로서 밟게 된 것이다. “경기장에 친한 선후배들이 많았거든요. 덕아웃에서 제가 걸어 나오는 걸 보고 다들 반겨주시더라고요. 제가 방송도 많이 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연락하신 분 들이 훨씬 많았어요. 핸드폰에 불이 났죠. 제가 야구를 했던 사람이기에 애국가 가 더 뭉클했다고, 성공했다며 많이들 축하해 주셨어요. 재작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갔을 때도 기분이 묘했죠. 친구들한테 ‘너네 야구 경기를 하면서도 못  가본 데를 내가 갔다’고 자랑도 하고요. (웃음)”  가수가 된 건 ‘어느 날 갑자기’였다. 야구를 포기한 뒤 압구정동 노래방에서 친 구들과 노래를 부르다가 캐스팅이 됐다. 바로 다음 날 녹음에 들어갔고, 딱 5일 만에 노래가 나왔다. “그 시절엔 그렇게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압구정동 에 길거리 캐스팅하는 분들이 늘 돌아다녔죠. 제가 원래 노래를 좋아했고, 야구 하면서 가수가 되는 게 꿈이긴 했어요. 그때는 이종범 선수 같은 분들이 자기 앨 범을 냈었거든요. 저도 그렇게 야구하면서 앨범 내는 게 꿈이었는데, 엉겁결에 돼버린 거죠.”  그때 부른 데뷔곡이 김희선 주연의 인기 드라마 <요조숙녀>(2003) OST였다. 첫 방송으로 <SBS 인기가요>에 나갔고, 소리바다, 벅스뮤직 등 음원 사이트 1위 까지 했다. 금방 뜰 것 같았지만 운이 없었다. 중국 진출을 타진하다 소속사와 틀어진 후 10년 동안 무명가수로 살아야 했다. “제가 평생 운동만 했잖아요. 무 식해서 돈 관계를 전혀 몰랐어요. 드라마가 중국에 팔려서 난리였는데, 제겐 10 원도 안 들어왔죠. 그런데 회사 운이 없었던 게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잘된 것 같아요. 만일 그때 잘됐으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겠죠. 갑부가 됐어도 여기저기 사기당하고 돈 떼먹히고 그랬을 것 같아요. (웃음)” 10년 동안 단기 알바만 찾아다녔다. 5일 만에 가수 데뷔를 했으니, 금방 뭐라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가수로 번 돈 은 0원이었다. “제가 안 해본 알바가 없어요. 새벽 5시 반에 인력소 에 나가면 어디로 보내질지 모르잖아요. 공사판 막노동도 하고, 바닷 가에 가서 방파제도 만들고. 베어링 조립하는데 진짜 힘들어요. 엄 청 뜨겁고 먼지가 장난 아니죠. 코엑스 같은 박람회장에서 부스도 엄청 만들었어요. 28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일한 적도 있어요. 밤이 나 새벽에는 수당이 계속 올라가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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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때 발목 다쳐 지금도 후유증

벼랑 끝에서 뮤지컬을 만났다. 뮤지컬을 하던 친구의 연기 수업에 우 연히 따라갔다가 강력한 권유를 받고 뮤지컬 <젊음의 행진> 오디션 을 보게 된 것이다. “그전에는 뮤지컬을 본 적도 없었어요. 그 친구가 성악 전공자라서 뮤지컬이 오페라 같은 건 줄 알았거든요. <젊음의 행진>은 주크박스 뮤지컬이고 익숙한 가요들이라 도전할 수 있었는 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 싶더군요. 가수 준비하면서 늘 혼 자였는데, 모여서 함께 연습하니까 따뜻하더라고요. 배우들끼리 으 으 하니까 단체 생활하던 옛날 생각도 나고요.” 뮤지컬 판에서도 생활고는 계속됐다. 대극장 도전은 언감생심, 소극 장만 쳐다보다 세 작품 연속으로 출연료를 못 받기도 했다. 도약의 기회는 소극장을 벗어나자 찾아왔다. “이제 그만하자 결심하고 쉬고 있었어요. 근데 <데스노트> 오디션이 떴더군요. 대극장 작품이라 꿈도 못 꿨는데, 이상하게 자꾸 맴돌길래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갔어요. 오디션 현장에 한 4000명쯤 왔을 거예요. 제가 아는 배우 는 거기 다 있더군요.” 처음 도전한 대극장 뮤지컬 오디션에서 가창력·비주얼 모두 높은 평 가를 받았지만, <데스노트>에는 그가 맡을 역할이 없었다. 결국 최 종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에 김문정 음악감독님이 그러 시는 거예요. 너무 아까워서 최종까지 올리긴 했는데, 미안하지만 우 혁 씨가 할 역할이 없다고. 근데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왜 안 봤냐 하더군요. 사실 꿈도 안 꿔봤었거든요. 차마 그렇게 얘기할 수 없어 서 집안일 때문에 못 갔다고 했죠. (웃음) 그랬더니 심사위원들끼리 이러쿵저러쿵 상의하더니, 늦었지만 오디션 보러 오라고 초대해주셨 어요.” 결국 <레미제라블>을 통해 ‘대극장 배우’로 재발견됐다. 카리스마 넘치는 학생혁명군 ‘앙졸라’는 강렬한 고음과 훤칠한 체격의 그에게 꼭 맞는 옷으로 보였다. 정작 본인에겐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였다.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적응하느라 혼이 났고,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추락해 발목 인대가 다 찢어졌다. 하지만 열정은 더 불붙었다. “전치 3개월이 나왔는데 1주일 만에 깁스를 풀어버렸어요. 그냥 압박붕대 감고 올라갔어요.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발목이 계속 꺾이죠. 고생했지만 제 뮤지컬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작품이잖아요. 포기할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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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밤잠 미루며 준비해 열정 폭발

무명가수 10년의 한도 풀었다. 2017년 KBS <불후의 명곡>에 고정 출연하며 김 경호·홍경민·이세준 같은 가수들을 제치고 우승도 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낸 뮤지컬스러운 무대 연출이 호평을 받아 ‘스토리텔러’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첫 출연 땐 뮤지컬 홍보하러 나갔으니 저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없었어요. 리 허설 때도 같이 나간 아이비 씨한테 방해가 될까봐 가성으로 부르며 조심하고 있었죠. 제 목소리가 워낙 크거든요.(웃음) 그런데 음악감독님이 뮤지컬배우가 왜 그렇게 자신이 없고 소극적이냐고, 본방 때는 에너지 있게 하라고 주문하시 더군요. 그래서 열정이 폭발했죠. 아이비 씨를 잡아먹을 듯이 했더니, 그걸 좋게 봐주신 PD님이 단독으로 나와달라고 하시더군요.” 작품 홍보가 아니라 가수 자격으로 나가게 되니 부담은 배가 됐다. ‘날고 기는 가수들과 내가 뭘로 승부해야 되나’ 하는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날 왜 불렀을까 고민하다 보니, 나는 뮤지컬 배우더군요. 배우로서 보여줄 것을 보여주자고 결심했죠. 그때부터 편곡자와 나흘 동안 밤새도록 김밥만 먹으면서 연습했어요. 그 편곡자가 ‘불후’ 우승제조기인 형인데, 저더러 너 같은 가수 처음 봤다더군요. (웃음)” 2017년 왕중왕전에서 무용을 가미한 뮤지컬 스타일의 연출로 많은 감동을 주 며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조용필의 ‘꿈’은 민우혁 자신의 이야기였다. “‘불후’에 나갈 때마다 주어진 곡을 보고 제게 인상 깊었던 작품의 인물을 소환해 연출했 었거든요. 그런데 왕중왕전은 자유곡이었어요. 누구를 소환할까 고민하다가 제 꿈을 소환한 거죠. 한 번도 제 얘기를 해본 적 없었거든요. ‘꿈’이라는 단어가 들 어가는 노래를 몽땅 찾아봤죠. 그중에 조용필 선생님의 ‘꿈’이 딱 제 이야기더라 고요.” 그의 꿈은 ‘지킬’이나 ‘벤허’ 같은 거창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꿈이었다. 뮤지컬 분야에서 단기간에 정상에 오른 것 같지만, 쉽 게 이룬 꿈은 아니다. “제가 노래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에 요. 어려서부터 제가 노래하면 즐거워하셨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노래로 남을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꿈을 품게 된 거죠. 그 꿈을 가져가기가 너무 힘들었 는데, 지금 제 무대 보고 많은 분들이 위로받고 감동받는다고 해주시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제가 참 멋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누군가를 위 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멋진 배우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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