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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 첫맛 그대로, 100년 식당의 품격 이문설농탕

종로대로에서 작은 골목을 따라 몇 걸음 들어가니 눈에 익은 간판이 보인다. 이문설농탕. 나무 간판은 모퉁이가 터지고 갈라졌다. 시간의 흔적은 낡음으로 읽히지 않는다. 긴 시간 자리를 지킨 이문설농탕은 어느새 맛집 이상의 품격을 갖췄다.
에디터 류상미 포토그래퍼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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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한 속을 채우는 든든한 국물
소뼈를 오랜 시간 끓이고 우린 국은 집 식탁에도 자주 오르 는 음식이지만, 식당에서 먹는 설농탕은 그것과는 분명 다 르다. 막 삶은 소면이 곱게 타래 지어 들어간 설농탕은 너무 진하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아 ‘후루룩’ 먹기 좋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금세 상이 차려지고 허전했던 속은 든든하 게 채워진다. 조금은 지치고 바쁜 날 우리는 설농탕을 먹으 러 간다. 이문설농탕에 들어서면 간판만큼이나 익숙한 나무 테이블 이 보인다. 설농탕 그릇에 긁히고 국물에 젖은 테이블은 니 스 칠도 다 벗겨져 오히려 보송보송 고운 태가 난다. 노포를 찾는 맛은 이렇게 소소한 곳에서도 느껴진다. 설농탕을 시 키면 배추김치와 석박지가 담긴 김치통과 다진 파가 상에 먼저 오른다. 김치를 먹을 만큼 담으면 양지고기가 수북하 게 담긴 설농탕 차례다. 다진 파를 넣고 간을 맞추면 먹을 준비는 끝난다. 소면 타래를 풀고 뚝배기 아래 담긴 밥을 살 살 저어 한 숟갈 뜨면 담담한 국물에 ‘이 맛이지’ 흐뭇한 만 족감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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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경영 원칙, 예전 방식 그대로
이문설농탕의 맛은 다른 가게와 비교하면 조금은 심심한 편이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서다. 사골을 17시간 이상 우린 사골 국물에 머릿고기와 양지를 삶은 육수를 함께 넣 어 끓이는 게 전부다. 기름기까지 싹 걷어내고 나니 국물은 깔끔하다 못해 심심하단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는 입맛을 쫓아 설농탕 맛을 바꿀 생각은 없다. 1980년 어머니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40년 가까이 이문설농탕을 운영하는 전성근 사장과 아내 전혜령 씨는 ‘처음 그대로’ ‘예전 방법 그대로’라는 말을 자주 쓴다. 가게를 물려받을 때 어머니의 방식대 로 설농탕을 만드는 것은 이문설농탕의 유일한 경영 원칙이다. “설농탕 재료도 오랜 시간 거래한 납품처에서 품질을 지켜서 받고 있어요. 뼈를 우리고 국물을 내는 것도, 음식을 담아내는 것도, 원래 방식 그대로여서 딱히 맛의 비법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어요. 단골분 들이 언제 오셔도 그때 그 맛이라고 할 만큼 맛을 유지하는 게 비결 이라면 비결이죠.” 첫맛을 지키는 고집은 수육 메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머릿고기, 볼살, 양지, 우설에 비장을 데치듯 삶아낸 ‘마나’가 함께 나온다. 소 비장은 보통의 수육에서는 찾기 힘든 구성이다. “‘지라’ ‘만하’라고도 하는데, 저희는 소리나는 대로 ‘마나’라고 불 러요. 마나는 철분이 많아서 빈혈이 있거나 몸이 허한 분들이 약처 럼 먹던 음식이죠. 마나가 허리에도 좋다고 단골 손님들은 꼭 챙겨 드시죠.”

 


115년, 대한민국 먹거리의 역사 
​이문설농탕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이문설농탕은 1904 년, ‘서울 음식점 허가 1호’로 등록하며 영업을 시작했다. 3·1운동보 다 15년이나 앞선 것을 생각하면 이문설농탕의 긴 역사가 짐작된다. 당시에는 ‘이문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농탕 외에도 여러 음식을 함께 팔았다. 당시 근처에 마을을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어 이문(里門)이 라 이름 지었다. 당시 종로 인근에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가게들이 많았다. 첫 주인이 일제강점기 중에 이름을 ‘이문설농탕’으로 바꿨 고, 두 번째 주인이 피맛골 근처에서 지금의 공평동으로 터를 옮겼 다. 2011년, 인근이 재개발되면서 근대 양식의 2층 한옥 건물에서 지 금의 자리로 옮겨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손기정 선수, 김두한이 이문설농탕 단골인 것은 유명하다. 전성문 사장이 이문설농탕을 맡 기 전에 이곳에 다녀갔던 분들이다. 전성문 사장은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를 자신이 기억하는 단골로 꼽는다. 이름 난 노포도 유명인의 사인을 가게 입구에 걸어 놓곤 한다. 이문설농 탕은 그래본 적이 없다. 이문설농탕을 다녀가지 않은 유명인이 없으 니 누가 다녀갔다고 자랑할 일도 없다. “제가 맡기 전부터 다니시던 단골도 많으시고 유명한 분들도 많이 들 오셨지요. 얼마 전엔 서울에 수학여행 오면 이문설농탕을 꼭 먹 으려고 했다며 중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는데, 어린 학생들이 알고 찾아오는 게 그렇게 좋고 고마웠어요. 제가 최고 단골로 꼽는 분은 과천에서 종로까지 매일매일 식사를 하러 오시던 100세가 넘는 어 르신이세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먼 길을 오시는 만큼 마음을 다 해서 대접했지요. 그분은 설농탕 값도 안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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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이냐? 설농탕이냐?   
설렁탕이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지만, 이문설농탕은 104년 전 첫 이 름을 그대로 쓴다. 설농탕의 시작을 찾아 오르면 조선 성조 6년에 이 른다. 성조가 정월에 지금의 용두동에 자리한 선농단(先農壇)을 찾 아 백성을 위로하면 국말이밥과 술을 내렸는데, 선농단에서 먹은 국 밥이라 하여 ‘선농탕’이라 불렀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설렁탕, 설롱탕, 설농탕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기원에 가장 가까운 말 은 역시 ‘설농탕’이다. 설농탕을 대표하는 식당인 만큼 평론가들의 입에도 자주 오르내렸 다. 맛 평가에서는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올해 초에 는 ‘2019년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에 오르기도 했다. 빕구르망은 3 만5000원 이하로 훌륭한 맛을 내는 음식점을 선정한다. 사전에 알 리지 않고 잠행하듯 다니는 터라 이문설농탕도 후에 사실을 알았다.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에 오르고 젊은 손님, 외국인 손님이 조금 늘 기도 했지만, 사실 요즘은 장사에 어려움이 많다. “올 2월부터 브레이크타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주 52시간 근무제 규 정 탓에 방편으로 낸 것이 브레이크타임이에요. 쉬는 시간에는 손님이 오셔도 들어오시라 할 수 없으니 답답하지요. 직원들이 바쁜 점 심시간을 치르고 쉬는 것은 좋지만, 직원 임금도 지켜줘야 하고 여러 가지 고민이 많습니다.” 1949년 서울신문에 실린 이문설농탕의 가격은 양에 따라 100원, 150원, 200원으로 적혀 있다. 전성근 사장이 가게를 맡은 1980년에 는 설농탕 한 그릇에 1500원이었던 것이 1997년 4500원, 2015년 8000원, 지금은 1만원이다. 몇 년 만에 온 단골은 그새 가격이 올랐 냐며 탓을 하기도 하지만, 첫맛을 지키려면 재료부터 직원들 처우까 지 챙길 것이 여럿이다. 돈을 벌자 생각했다면 분점도 냈을 터지만 맛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수십 년 자리를 지키는 직 원들의 노련함, 재료의 품질을 지키는 고집, 사업이 아닌 맛을 지키 는 집이라는 자부심. 이문설농탕의 한결같은 맛은 이런 고집에서 비 롯된다. 세상은 변해도 이 곳 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10년, 20 년 뒤에 찾아가도 항상 같은 맛의 이문설농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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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설농탕
위치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38-13 영업시간 평일 08:00~21:00, 일요일 및 공휴일 08:00~20:00 

브레이크 타임 15:00~17:30, 명절 휴무 문의 02-733-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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