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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YAGE > 이수진의 양조장 투어 ⑦ 구스베르크

‘마이 비어 버킷리스트’에 뜬 새로운 별
이름부터 에로틱한 호니베티 맥주는 오스트리아의 구스베르크 양조장에서 생산된다. 이 양조장은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이용해 바이오 맥주를 양조하는 유기농 인증 양조장이기도 하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발칙한 이름 때문에 필자의 맥주 버킷리스트에서 제외될 뻔한 호니베티를 찾아 구스베르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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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소믈리에 공부를 마친 후 첫 진행을 맡은 맥주행사에서 필자 는 큰 난관을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오스트리아 맥주 시음회를 준비 중 일어난 일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30여 개에 이르는 맥주 리스트를 보는데, 호니베티(Horny Betty)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구스베르크 양조장에서 보낸 맥주였다. 설마 하는 마 음으로 구글에서 검색하니 성인인증을 하라고 한다. 청소년에게 유 해한 정보가 있다면서.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호니 (Horny)를 그저 벌꿀로 읽은 동료는 평온한데 해석에 따라 성적인 의도가 다분한 맥주 이름 앞에서 필자만 좌불안석이다. 대사관 주최 행사라고 해서 꼭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일 필요는 없지만, 국내 수입원을 찾기 위한 수입 상담회 형식으로 진행하는 공 식적인 행사다 보니 걱정이 앞섰다. 이 맥주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 까? 참고로 지난 와인 시음회에서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와인의 대 명사인 오스트리아 화이트와인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으로 삼겹살 을 추천했다가 ‘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격’의 기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남자들을 반하게 할 엄청난 효능의 허브를 넣은 맥주’라는 짧 은 설명만 덧붙였다. 이 짧은 설명이 ‘성적으로 몹시 흥분한 베티’라 는 이름에 더해지자 (당연히도) 온통 관심이 이 맥주에 집중됐다. 하지만 정작 시음회장에서는 베티에 대한 문의도, 샘플 요청도 없었 다. 수줍은 사람들의 관심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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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이름의 맥주, 호니베티
‘베티’는 여자 이름이 아니다. 부재료로 사용된 음양곽(淫羊藿, 하 루에 100여 차례나 교미한 음탕한 양을 다시 흥분시킨다는 풀로 이름에 ‘음란할 음(淫)’이 들어간다)에서 비롯된 단어다. 이제라도 그 설명을 할까 망설이던 찰나, 시음을 위한 샘플 분량이 모두 서빙 돼 버렸다. 덕분에 필자는 맛 한번 보지 못한 호니베티를 라벨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몇 달 후 빈(비엔나) 와인 컨퍼런스에서 만난 지인은 필자에게 흥미 로운 사실을 들려줬다. 구스베르크가 데메터(Demeter) 인증을 받 은 맥주 양조장이라는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 을 이용한 바이오(Bio) 맥주를 만들고 있었다. 붉은 라벨 속 뿔 달린 베티의 에로틱한 이미지와 세계 최고 레벨의 유기농 인증을 받은 맥주양조장이 같은 곳이라니. 발칙한 이름 때문에 나의 맥주 버킷 리스트인 ‘별표 양조장’에서 제외시켰는데 호기심이 일었다. 별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곧바로 양조장에 전화를 걸었다. 상시 양조장 투어는 없고 현재 양조장 펍도 운영기간이 아니지만 방문은 언제나 환영이라는 대답. 필자는 ‘환영’이라는 말만 기억하기로 하고 새로 운 별을 찾아 예정에 없던 길을 나섰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출발한 차는 호숫가 마을이 많은 잘츠캄머 굿 방향으로 20여 분을 달려 양조장에 도착했다.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지역,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단층 회색건물에 위치한 보틀숍과 시음공간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단정하기만 했다. 2007년 브라우 마이스터인 라인홀드 바르타(Reinhold Barta)가 자신의 양조장을 열었고, 규모가 커지면서 2013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양조장 직원이 천천히 둘러보라며 건네준 브로슈어를 펼쳤다. 맥주 리스트는 의외로 전통 스타일의 맥주들이 대부분이다. 헬레스, 바

이스, 슈타인비어, 페스트비어, 츠비클, 스타우트, 복비어, 라들러 등 익숙한 맥주들이다. 여기에 글루텐 프리, IPA, 임페리얼 스타우트, 발리와인, 위스키맥주 같은 크래프트 라인도 눈에 띈다. 그리고 곧 양조장 방문의 클라이막스가 찾아왔다. 바로 시음의 순간! 이 순간 의 고민은 단 한번도 치열하지 않은 적이 없다. 외관을 살피고 향을 맡고 목넘김까지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음은 곧 음 주로 이어진다. 욕심껏 무턱대고 많은 맥주를 마시다 보면 금세 취기 가 올라 제대로 된 맛을 느끼기 힘들어진다. 치열한 고민 끝에 세 가지 시음 맥주를 골랐다. 새콤한 베리 맛이 잘 어울리는 루바브 라들러는 글루텐 프리 제품이다. 루바브는 주로 파 이나 디저트류로 즐기는데 전통적인 라들러 재료인 레몬과 만나 맛 을 끌어올렸다. 두 번째 선택은 오스트리안 앰버 에일인 트리플에이 (Triple A). 몰트 캐릭터가 주가 되는 앰버 라거와 달리 이 맥주는 시 트러스계 홉 풍미와 오렌지필 같은 쌉쌀한 풍미가 점잖게 조화를 이 룬 맥주다. 마지막은 대망의 호니베티! 이 병을 골라잡는 순간 직원 이 ‘오~예’를 외치며 엄지를 올렸다. 질세라 나도 Ziegenkraut!(음양 곽의 독일어 표현)를 외쳤다. 사뭇 비장하게 이 맥주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직원이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 를 바라봤다. 설마 여기에서도 마실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유럽연합의 결정으로 앞으론 음양곽을 맥주 부재료로 사용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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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지면에 실을 수 없을 만큼) 다소 거친 표현이 동반된 걸 보니, 짐작건대 최고의 (정력)맥주에 생 길 변화에 불만이 가득한 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생의 처 음이자 마지막 음양곽 맥주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망설이지 않 고 바로 전화해서 다행이었다. 별표 리스트만 고집하지 않아서 다행 이었다. 희소성이 아니더라도, 음양곽의 효과가 아니더라도 맥주는 훌륭했 다. 붉은 빛이 감돌고 스위트 아로마가 캐러멜, 검붉은 과일의 풍미 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향과 맛이 즐거웠다. 알코올 도수 9도에도 불 구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탁월한 밸런스 때문이었다. 같이 시음한 직원에게 에로틱한 이름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된 평가 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직원은 그런 선입견이 있었지만 결국 맥주 본연의 맛으로 두 해 연속 오스트리아 소규모 양조장이 만든 최고의 복비어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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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고 유니크한 구스베르크 맥주들

구스베르크 맥주 라벨에는 유독 동물들이 많다. 구스베르크는 전통 양조법에 기반을 두고, 합성 첨가제의 사용 없이 자연친화적인 좋은 재료를 사용해 바이오 맥주를 만든다. 포르쉐 가문과 합심해 오스트리아의 레드와인 토착품종인 츠바이겔트 포도를 사용한 맥주를 만드는가 하면, 셰리를 담은 캐스크에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숙성한 다. 또 인근 알프스에서 채취한 허브로 그린 베티 맥주를 빚거나, 옛 방식을 살려 뜨겁게 달군 돌을 이용해 맥주의 캐러멜 풍미를 끌어내 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빨간색 호니베티는 레시피에서 음양곽을 뺐지만 원 맥주맛과 차이가 안 나도록 레시피를 수정한다 는 후문이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곳에 다시 돌아와야겠다는 마음 이 커졌다. 구스베르크 양조장과 다음에 이곳에서 마실 맥주들이 필자의 리스트에 새로운 별로 추가됐다. 크래프트 맥주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창의력이다. 기본을 충실히 지 키면서도 맥주의 세계를 무한정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은 창의력에 기 인한다. 바로 이곳, 구스베르크 양조장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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