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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YAGE > 이수진의 양조장 투어 ③ 쿠흘바우어 양조장

바이에른의 맥주와 양조장들에 경의를!

독일 바이에른주의 아벤스베르크 마을엔 세계 맥주 마니아들로부터 ‘맥주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으로 탄생한 쿠흘바우어 양조장이다. 구불구불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건축물 꼭대기엔 말 그대로 황금빛 맥주 조형물이 설치돼 ‘맥주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글 이수진(디플롬 비어소믈리에) 사진 이수진, 쿠흘바우어 양조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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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맞는 모처럼 맑은 날. 바이에른주에 있는 온천마을인 아벤 스베르크 기차역에 내려 시내를 향해 걸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건 물 위 첨탑과 만화 속 우주선 모양이 살포시 얹어진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으로 유 명한 쿠흘바우어 양조장이다. 쓰러질 듯 옆으로 휜 첨탑이 인상적인 쿤스트하우스를 뒤로 하고 양조장으로 직진했다. 연노란색 양조장 건물 어깨 너머의 알록달록한 대형 조형물에 잠시 시선을 뺏겼지만 가이드 투어를 위해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가이드 투어는 12유 로. 맥주 1잔과 작은 브레첼이 포함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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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예술(Bier und Kunst)
양조장 오너인 레온하르트 살렉은 학생 시절부터 양조장의 일상에 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는 했다.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곡선, 밝고 생생한 색채, 신선하고 반짝이는 자연환경들은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이러한 특별함이 창조적인 작업 을 할 수 있는 상상력을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분위기는 신비롭다. 내부의 모든 벽면에 새겨진 곡선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져 마치 마법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처럼 보인 다. 지하 12미터 깊이의 옛 셀러는 ‘레오나르도 셀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그곳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실제 크 기로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 투어가 진행되는 쿠흘바우어 비 어월드에는 오랜 세월동안 아벤스베르크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난 쟁이들의 양조장이 있다. 농부, 홉 재배자, 맥주 양조가 등으로 꾸려 진 그들은 쿠흘바우어를 최고의 밀맥주양조장으로 만들기 위해 각 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리고 훈데르트바서는 그들을 위한 집 을 모티브로 쿠흘바우어타워를 만들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들 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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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흘바우어 비어월드(Bierwelt)

필자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방인이다. 독일어 투어에 합류한 필자가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낯설어 보였는지 사무실에서 영어로 된 안내물 을 챙겨줬다. 커다란 양조탱크들이 즐비한 방을 지나면 ‘맥주와 건 강’이라는 테마의 공간이 나온다. ‘바이스 비어는 몸과 마음을 건강 하게 해준다!’라는 문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니 인형 약사가 ‘똑똑 한 사람은 쿠흘바우어에서 약을 사지’라며 내게 맥주를 처방해준 다. 그곳은 홉과 몰트로 만든 약술들이 가득했다. 바이에른에서 맥 주는 일상의 활력이자 위안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극도로 싫어했다. 어둡고 푸른 발효실은 코 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상이다. 그 안은 코끼리대신 황금빛 맥주입자가 채워져 있었다. 곡선을 따라 들어간 난쟁이들의  양조장에서 밀맥주를 만드는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지하셀러 를 나와 다양한 색과 크기의 맥주병들이 벽돌로 된 벽 속에 장식된 보틀월(Bottle Wand)을 지나면 마침내 쿠흘바우어 맥주탑의 입구 가 나온다.  훈데르트바서는 바이에른의 맥주와 양조장들에 경의를 표하기 위 해 70미터 높이의 탑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건물도 교회 탑보다 높게 지어서는 안됐기 때문에 탑의 높이는 50미터로 수정됐다. 그러자 이번엔 맥주천국을 상징하는 타워 상단의 황금빛 대형 조형물이 지나치게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문제가 제기 됐다. 결 국 황금빛 원형 헤드는 축소 됐다. 높이도 35미터로 더욱 낮아졌다. 그제서야 건축이 승인됐다. 쿠흘바우어타워는 맥주의 주원료와 양 조법을 포한한 총 12가지의 컨셉을 각 구간에 배치했다. 자연을 사 랑하고 순수한 동화같은 작품을 그려온 훈데르트바서는 나무 세입 자의 공간을 만들고, 난쟁이들을 위한 지하집과 어린이를 위한 공간 을 따로 마련했다. 투어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쿠흘바우어 타워에 오르거나, 비어가르텐에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맑은 날씨에 탑 꼭대기에 올라 훈데르트바서가 꿈꾼 맥주천국을 만났다. 천국은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 수십 개의 창문과 풍경을 감상하며 쉴새 없이 계단을 올라서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맥주에 대한 갈증과 다리의 피로는 천국을 만나는 순간 모두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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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이 맥주타워는 투름바이세(Turmweisse)라 는 맥주로도 만들어졌다. 스페셜 몰트를 사용해 밝은 호박색을 띤 이 맥주는 효모를 여과하지 않은 헤페바이젠 스타일로 보다 깊은 풍 미가 있다. 투름바이세 전용잔은 윗부분이 특별히 둥글게 디자인되어 맥주 특유의 부드러운 거품과 풍미를 즐기는데 적합하다. 밀맥주 (Weissbier) 스페셜리스트라는 양조장의 로고에서 알 수 있듯이 쿠흘 바우어는 밀맥주를 전문 생산하는 양조장이다. 알테리베(Alte Liebe, 오랜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랑받는 둥클레바이세처럼 바이에른의 오랜 전통을 지켜오며 다양한 스타일의 밀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2010년에 완공된 쿠흘바우어타워는 군림하는 상징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생활의 한 조각이다. 타워 옆으로 조성된 비어가르텐에는 매년 부활절 마켓이 열리고 크리스마스 전, 4주간의 강림절 기간에 는 수십만개의 LED 조명이 타워를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 시킨다. 끝이 어디로 가 닿을지 모르는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만나게 되는 건 우리의 삶이다. 삶이야 말로 가장 신비롭고 멋진 세계니까. 이곳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탑의 꼭대기에 올라 맥주천국에서 잊 고 지냈던 내 자신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잠시 모든 걸 내려 놓고 손을 뻗으면 된다. 이곳에는 손을 뻗으면 어디에든 맥주가 넘쳐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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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수진은
현재 주한오스트리아대사관 무역대표부 주류담당 상무관이다. 국제공인맥주전문가 과정인 되멘스 디플롬 비어소믈리에 자격을 획득한 맥주전문가이자 국제와인자격인증(WSET)을 취득한 와인소믈리에다. 2017 한국 비어소믈리에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같은 해 열린 월드챔피언 비어소믈리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면서 ‘국가대표 비어소믈리에’로 불리게 됐다. 현재 국내 유일 세계비어소믈리에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등 세계 맥주양조장을 찾아 다양한 맥주문화를 경험하고 그 내용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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