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 스토리 > 진 ‘큐로’

핀란드의 자연, 한 병의 술에 담기다

젊고 밝은 사람들이 술을 만들고 있었다. 핀란드의 신생 주류회사 큐로의 창업자 이야기다. 그들은 창업 7년 만에 북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술 브랜드를 키워냈다. 지난 달, 필자가 직접 핀란드에서 큐로 창업자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유쾌한 창업 스토리와 앞으로의 전략을 들었다.
글 조용탁 이코노미스트 기자 포토그래퍼 임익순 취재협조 큐로

 

5c1b9075e61f3cf3e4d1a4c4a3f7a900.jpg
 

 

큐로의 본사는 이소큐로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있다. 헬싱키에서 북 쪽으로 300㎞ 정도 올라가야 한다. 이소큐로로 향하는 길, 기차 옆 자리에 앉은 핀란드 할머니가 필자에게 말을 걸어 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신기해하면서도 반겨줬다. 목적지를 이야기하자 “그곳 은 핀란드에서도 정말 촌동네”라며 여행 목적을 궁금해 했다. “큐로 라는 핀란드 진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고 설명하자 “젊은 청 년들이 꽤 맛있는 술을 만들었다”며 “핀란드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재미있는 회사”라고 설명해줬다. 눈 덮인 철로를 지나는 4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바사(Vaasa)’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다시 50㎞ 정도 들어가면 이 소큐로다. 참고로 북위 66도 33분부터 북극권인데, 이소큐로는 북 위 63도에 있다. 북극 지역 바로 아래인 셈이다. 이곳은 호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북방 한계점이기도 하다. 큐로 관계자는 “북극에서 가 장 가까운 양조장”이라고 회사를 소개했다. 다음 날 아침 이소큐로 로 향했다. 증류소에 도착하자 큐로의 다섯 창업자들과 직원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환영해줬다. 
e1475e74d0972e8cc2c68a97467793f9.jpg
 


동네 친구 5인방의 의기투합, 큐로의 탄생비화

큐로는 2012년 설립된 기업이다. 이소큐로와 바사에 살던 동네 친구 들인 미코 데닐라, 미카 리팔넨, 조우니 리툴라, 칼레 발코넨, 믹코 코 스켄 등 5명이 모여 창업했다. 그리고 불과 7년 만에 핀란드에서 가 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조우니 리툴라가 설립 계기를 설명해줬다. “친구들과 사우나를 하며 미국산 호밀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습니 다. 누군지 헛갈리는데, 하여간 누가 말 했어요. ‘호밀은 우리동네에 도 많이 있는데,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정말 맛있는 핀란 드 술이 필요한 거 같아!’ 하고요.” 호밀은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작물이다. 구하기 쉽고 다양한 술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첫 번째 목표는 위스키였다. 하지만 위스 키는 숙성에 약 5년이 걸린다. 진은 다르다. 제조 시간이 짧아 빠른 유통이 가능하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술 브랜드 를 꿈꾸며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서로에게 친구를 소개하며 팀을 만들었다. 미코 데닐라는 “미카와 믹코를 헬싱키의 한 식당에서 만났어요. 미카가 말하더군 요. ‘바사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가 있는데 같이 술을 만들어 보려 해. 너랑 같이 일했으면 좋겠어’ 라고요. 저는 오케이 했어요. 그리고 30분 후엔 계약서에 서명하고 구청에 가서 회사 법인을 등록했죠” 라며 그 날의 일을 회상했다. 핀란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강한 나라다. 동의하고 악수를 하면 계 약서에 사인한 정도의 위력이 있다. 홍콩에 큐로 진을 수입 유통하는 주류 도매상은 미코의 이야기를 듣자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술이 맛있어서 연락을 했어요. 필요한 물량을 이야기 했더니 술을 보내주더군요. 계약서도 쓰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있다 전화로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혹시 돈은 어떻게 지불하고 싶으세 요?’라고요. 홍콩에서는 상상도 못할 거래 방식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하세가와 주류점을 운영하는 오사와 사카쿠씨도 비 슷한 경험을 했다. “대화를 나누면 그게 계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약속을 지키며 스스로의 신뢰를 높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뢰를 중요하 게 여기는 일본에서도 보기 어려운 거래 방식이었습니다.” 

 

7056f40214ab9ad20fa9620003fbc030.jpg
 

 

술 제조법부터 차근차근, 맛있는 술을 만들자
사우나에서 창업하기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며칠 후,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발견한다. 창업자 중 누구도 술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랐던 것이다. 술 제조 공장에서 일하기는커녕 술집에서 일한 경험조차 없 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두 술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우리 가 먹어서 맛있는 술이면 성공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맨땅에 헤 딩’식으로 술 만드는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코는 “구글에서 술 만드는 법을 검색하며 자료를 모았고, 바사대학의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며 기초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업 자금은 각자의 형편대로 마련했다. 미코는 집을 저당 잡혔고, 미카는 아버지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투자를 받았다. 유럽 창업 펀드의 지원도 받았다. 작업 장소는 문 닫은 치즈공장이었다. 그곳 은 이소큐로에서 가장 오래된 공장으로 산업구조와 인구 변화로 당 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장소였다. 2013년 봄이 되자 창업자 5명 모두 인근 들판을 다니며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약초를 채집해왔다. 핀란 드 고유의 향을 머금은 진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들은 결국 핀란드 호밀로 만든 진에 다양한 약초를 넣었다. 이소 큐로 지역에서 자라는 16종의 야생 식물이 사용된다. 메도우 스위 트, 자작나무, 크랜베리, 산자나무 등의 비율이 높은데, 지역에서 직 접 재배해 수확한다. 리톨라는 “핀란드 밤의 서늘함과 태양을 머금 은 호밀의 따뜻함을 담았다”며 “한잔 하면 핀란드의 자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778d5ef1c75caa4077df53e5b01f2c2.jpg

최초의 큐로 진 500병 출시부터 세계 주류 품평회 석권까지첫 번째 제품이 나오기까지 약 2년이 걸렸다. 2014년 이들은 500병 의 진을 만들었다. 이를 동네 친구와 친척들에게 강매해 마련한 자 금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미카는 “돈도 떨어지고 친척들에게 억지로 술을 팔기도 어려워진 위기였다”고 2015년 봄을 떠올렸다. 그렇게 어두운 분위기에 빠져들던 회사에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혹시나 해 서 진출한 주류박람회에서의 수상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전 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주류박람회인 국제주류품평회 (IWSC)였다. 무려 2015년과 2016년 연속으로 진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샌프란시스코 주류 경연대회에서도 2016년과 2017년 금 메달을 획득했고, 2016년엔 파리 패션위크에서 대표 진으로 자리잡 았다. 판매도 기록적으로 늘어났다. 2015년엔 무려 12만 병의 판매고를 올렸다. 2017년엔 60만 병을 팔았다. 2018년엔 27만 리터의 진을 팔 았는데 매출은 500만 유로, 한화로 약 63억7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19년 매출 전망은 600만 유로(한화 76억원)다. 미카는 “불과 수년 만에 핀란드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브랜드로 성장했 다”고 말했다. 수출도 늘었다. 핀란드와 이웃인 에스토니아, 스웨덴, 노르웨이를 거쳐 전 유럽으로 퍼졌다. 현재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 중인데 아시아에선 홍콩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성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1년이면 큐로 증류소 비장의 무기인 핀란드 호밀 위스키의 숙성이 끝난다. 이미 세계 곳곳의 주 류 도매상들은 큐로 위스키 주문을 넣고 있다. 큐로 관계자는 “우리의 성공에 자극 받은 다른 핀란드 창업자들이 술 사업에 뛰어들었으 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가 세계적인 명 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핀란드 호밀 위스키가 세계 주류 시장에서 존중 받는 위치에 오르길 희망해서다. 리툴라는 “좋은 것들은 정직 하고 열광적인 사람들에서부터 온다고 믿는다”며 “한국 분들이 북 극에서 온 우리 술을 즐기시길 원한다”고 말했다. 

85b072c6709dbd54a18cb89d47cb04e4.jpg

 

 

진(Gin), 넌 누구냐? 


b7d81fd15798ca61d743546c327b4cf5.jpg

진은 맛있고 강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40도 내외인데, 제조 지역에 따라 고유한 향과 개성이 강해 칵테일에 많이 사용된다. 진에 토닉워터를 넣어 마시는 진 토닉,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젓지 말고 흔들어서’ 달라고 주문했던 마티니 등이 대표적인 진 칵테일이다.  진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당시 몇몇 알코올 증류주가 있었지만 역한 냄새 탓에 마시기 어려웠다. 그러다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의 실비우스 교수가 알코올 냄새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렇게 알코올을 이용한 증류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각광 받게 된 술이 바로 진이다. 동네 약국에 처음 등장한 진은 빠르게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술로 자리 잡았다. 40도의 독주지만 맛이 깔끔하고 저렴한 덕에 지갑이 얇은 서민층이 애용했다. 1689년 영국에선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오른다. 네덜란드에 우호적이던 월리엄 3세는 와인과 브랜디에 높은 관세를 붙인다. 저렴한 네덜란드 진이 영국에서 자리잡게 된 계기다. 서민에게 인기 있던 진은 얼마 후 현지화에 성공한다. 런던 드라이 진으로 불리는 특유의 진이 나타나 영국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사랑 받는다. 차이점은 원료에 있다. 영국에서는 진 제조용으로 주로 곡물을 사용한다. 진의 원조인 네덜란드는 호밀이 주원료다. 요즘 유럽에서 뜨고 있는 핀란드의 큐로도 호밀 베이스 진이다.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