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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YAGE > 이수진의 양조장 투어 ② 벨텐부르크 수도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양조장에서 하룻밤

서기 600년경,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설립한 벨텐부르크 수도원은 1035년 이전부터 맥주양조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17세기에 건립된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어우러져 연간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불러모은다.  글 이수진(한국비어소믈리에 챔피언) 사진 이수진, 벨텐부르거 양조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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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필자는 뮌헨으로 간다. 목적은 물론 맥주에 있다. 옥토버페스 트와 비어가르텐을 가득 채운 열기를 무심히 지나친다면 바이에른 곳곳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지역 양조장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떠들썩한 맥주축제가 열리는 지역에서 벗어난 곳이어서 한적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지역 맥주들을 맛볼 수 있다. 2017년 뮌헨에서 열린 세계비어소믈리대회를 마치고 나니 휴식이 절실했었다. 그래서 도나우 지역인 켈하임으로 향했다. 켈하임은 도 나우 협곡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도시이자 나폴레옹과의 전투에 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자유의 전당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리고 슈 나이더 바이세 양조장과 벨텐부르크 수도원 양조장이 있는 곳이기 도 하다. 서기 600년경,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설립한 벨텐부르크 수도원은 1035년 이전부터 맥주를 양조해왔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17세기 독일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아삼(Asam) 형제가 건립한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불러모은다. 필자가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은 순례자의 고행처럼 순탄치 않게 이 어졌다. 이른 아침, 슈나이더 바이세 양조장을 거쳐 벨텐부르거 양조 장으로 가기 위해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탔다. 하지만 기차는 출발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로 고장으로 원점인 뮌헨 중앙역으로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이후의 일정은 엉망이 돼버렸다. 어렵게 잡은 슈나 이더 바이세 방문 기회가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버린 것이다. 아쉬 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다음 행선지인 고요한 벨 텐부르크 수도원에서 맥주와 함께 보내는 느긋한 밤은 모든 고난을 잊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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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 협곡을 건너 만난 성직자들의 은밀한 공간

 벨텐부르크 수도원으로 가기 위해 켈하임 시내를 벗어나 선착장에 서 유람선 미즈 레나테(Ms. Renate)호에 탔다. 궂은 날씨였지만 수도 원으로 가는 길의 절경을 감추지 못했다. 둔켈을 마시며 도나우 협곡 을 건넜다. 이후 배에서 내려 오랜 세월 도나우강 범람의 기록들이 새 겨진 외벽을 지나 마침내 수도원 입구에 도착했다. 수도원은 성당과 양조장, 성 게오르그 게스트하우스 등 총 세 공간으 로 나뉜다. 게스트하우스의 리셉션은 오후 6시까지여서 체크인을 서 둘렀다. 필자에게 배정된 방은 주변 경치를 고스란히 눈과 마음에 담 을 정도로 큰 창이 인상적인 2인실이었다. TV도, 인터넷도 없는 소박 한 방이었다. 책걸상과 침대를 제외하고 유일한 가구인 빨간색 1인 의 자에 앉아 웰컴 쿠키를 먹으며 창 밖을 바라봤다. 수도원의 게스트하우스는 종교가 없는 필자를 성실하게 만들었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기도와 노동을 기본 규칙으로 삼았던 성직자들 이 모인 곳이다. 십자가와 성경책만이 놓인 책상에 앉아 미처 마무리 하지 못했던 원고집필 ‘노동’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수도원의 이 곳 저곳을 걸었다. 이곳에서의 양조장투어는 주말과 공휴일에만 진 행되므로 함께할 수 없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방문객을 위한 마 지막 프로그램도 이미 시작됐다는 걸 알았을 땐 참으로 허탈했다. 결국 안뜰에 있는 펍의 메뉴판을 훑어보는 것에 만족하며 필자는 지 난번 왔을 때 일정상 둘러보지 못했던 수도원 뒷동산으로 향했다. 동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예수 14처’를 새긴 돌탑들이 있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기분으로 동산을 올라 프라우엔베르크 예배당을 지 나 다시 수도원 안뜰로 내려왔다. 산책을 마치고 성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선물용 묵주와 이곳의 맥주 로 만든 브랜디를 산 뒤 방에 잠시 들러 씻고 다시 나왔다. 가장 기대 했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맛봐야 할 맥주 리스트를 미리 작성해 두었기에 펍에서 여유 있는 저녁 식사를 오래도록 할 생 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비어가르텐은 어둡고 조용했다. 조 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사람들이 오갔던 곳인데, 모두 사라졌다. 수 도원 안에 마련된 펍이니 일찍 마감을 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저녁엔 영업을 아예 하지 않을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켈 하임으로 나가려면 유람선을 다시 타야 하는데 유람선 운행은 끝난 시점이었다. 육로로 나가려면 좁고 어두운 밤길을 한참이나 걸어가 택시를 잡아타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택시를 금방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게스트 하우스를 돌아다녀봤으나 자판기 하나 없고 필자의 허기를 도와줄 사람 한 명 발견할 수 없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가 가방을 뒤 적이자 손바닥 만한 봉지에 담긴 젤리와 아침에 먹다 남긴 빵 쪼가리 가 나왔다. 젤리를 씹으며 필자는 다시 수도사의 고행을 시작했다. 허 기를 잊기 위해 ‘책 읽는 방(Lesezimmer)’을 찾아 나섰다. 게스트하 우스 방 열쇠로 도서관까지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허 기를 잠시 잊거나 만의 하나 그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방에는 독일어로 된 책 몇 권뿐이었다.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그토록 아름답고 고즈넉했던 풍경에 이런 고난이 숨 겨져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이나 했을까…. 이 열쇠로 책 읽는 방이 열 렸으니 혹시 다른 곳도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문마다 열쇠를 태그해 봤다. 책 읽는 방 옆으로 커피키친, 음료보관실 등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필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다음 방에 키를 태그하자 문이 열렸다. 아멘! 안쪽에 있던 한 남자가 밖으로 나오려다 나를 보고 웃으며 이 안에 맥주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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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맛보는 천국의 맥주, 벨텐부르거 양조장

맥주로 가득한 두 개의 대형 냉장고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맥주 를 자유롭게 꺼내 마시되 장부에 기록하고 요금은 접시에 올려놓으 라는 내용이었다. 벨텐부르거 양조장에서 생산한 모든 맥주와 독일 와인 그리고 초콜릿과 미니프레즐이 있었다. 다시, 아멘! 필스를 제외 한 모든 맥주의 가격은 동일하게 2.5유로였다. 곧 도수가 낮은 둥클레 스 라들러와 초코바로 나만의 비어타임을 시작했다. ‘지상에서 맛보는 천국의 맥주(Ein Bier im Himmel wie auf Erden!)’라는 이곳의 슬로건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허기가 졌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측은한 눈길로 내게 에그샌 드위치를 건넸다.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도시에 위치한 조용한 수도 원 휴게실, 그곳에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동양인에게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몇 마디 짧은 대화가 오가다 어느새 입안을 가득 채 운 샌드위치 때문에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눈인사로 대신했다. 허기를 물리치자 잊고 있던 이곳에서의 계획이 떠올랐다. 벨텐부르 거 맥주를 종류별로 시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벨텐부르 거 맥주 시음이 시작됐다. 밝고(Hell) 맑은 날씨에 제격인 헤페바이 스 ‘헬(Hell)’, 방문객들에게 인기있는 바로크양식의 성당만큼 유명 한 ‘바로크 둔켈’, 축제의 맥주 ‘아노 1050’, 독일 남부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아삼 형제의 이름을 딴 ‘아삼복’까지 꼼꼼하게 시음을 마 쳤다. 지나치게 꼼꼼했던 탓일까. 취기가 나를 일으켰다. 방으로 올 라가 침대에 누웠다. 배고픔을 견지디 못하고 먹어버린 맞은편 침대 의 쿠키가 생각났다. 수도원을 그려 넣은 소박한 쿠키는 더 이상 없 지만 내 손에는 아직 한 병의 맥주가 남아있었다.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는 ‘켈러비어.’ 마틴 루터는 맥주를 구원의 음료라 했다. “맥주를 마시는 자는 곧바 로 잠이 든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 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니 맥주를 마시자.”  오늘의 죄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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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수진은
현재 주한오스트리아대사관 무역대표부 주류담당 상무관이다. 국제공인맥주전문가 과정인 되멘스 디플롬 비어소믈리에 자격을 획득한 맥주전문가이자 국제와인자격인증(WSET)을 취득한 와인소믈리에다. 2017 한국 비어소믈리에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같은 해 열린 월드챔피언 비어소믈리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면서 ‘국가대표 비어소믈리에’로 불리게 됐다. 현재 국내 유일 세계비어소믈리에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등 세계 맥주양조장을 찾아 다양한 맥주문화를 경험하고 그 내용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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